■ 시간의 구조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는 자극갈망과 인정갈망 외에도 상대방과 스트로크를 주고받기 위해 일상행활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환경이나 시간을 계획하려는 욕구인 구조갈망이 있다. 이것은 교류분석에서는 시간의 구조화(time structure)라고 한다. 인간은 자라면서 배운 방식에 따라 선호하는 시간활용 방식이 다르며, 계획한 시간활용 방식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얻는 스트로크를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한다. 즉, 개인이 설정하는 시간의 구조화에 따라 스트로크 교환의 양도 달라진다. 인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받는 스트로크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을 구조화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시간의 구조화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방법이 있다(Harris, 1991).
1) 철회
철회(withdrawal)는 스트로크를 교환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지닌 경우 타인을 멀리하고 상대방과의 상호교류를 중단하는 것이다. 철회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만의 생각이나 상상에 잠긴 상태로 있으며, 자기 스스로 스트로크를 주려는 자기애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을 영유아기에 부모로부터 최소한의 스트로크조차 받지 못하여 잘못된 관계형성을 하면서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되어 그 안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철회는 서로 주고받는 자극이 없기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안전한 시간의 구조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고받는 자극이 없기 때문에 그만큼 받는 보상도 적다. 지속적으로 철회를 사용하여 시간을 구조화한다면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부적응문제를 경험하기 쉽다. 타인과의 의사소통보다는 혼자서 생각이나 공상에 잠겨 있는 것, 심신의 증상을 호소하면서 거의 모든 시간을 그 증상에만 사로잡혀 있는 건강염려증, 알코올 사용 장애나 여타의 물질사용장애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2) 관습
관습(riwual)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안전한 시간의 구조화 방법의 하나로, 타인을 만나면 의례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인사 관습에서부터 여러 다른 의식에 이르기까지 전통이나 관습적인 행사에만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스트로크를 유지한다. 외부 대상이나 관습적 행동을 통해 스트로크를 추구한다는 점이 철회와의 차이이다. 보통 외부의 대상은 특별한 개인이라기보다는 동류집단으로, 동창회나 제사 등의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간접적이고 최소한의 스트로크를 유지한다. 따라서 타인과 깊은 인연을 맺는 일이 없어 상처를 받을 일도 없고, 결과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교적 안전한 시간의 구조화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자극은 최소한의 수준에서만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친밀한 관계형성은 어렵다. 또한 편리한 이 의식도 굳어지면 강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3) 활동
활동(activity)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시간의 구조화 방법 중 하나로서, 자기 스스로 외부의 대상에 접근하여 구체적인 형태로 스트로크를 교환하는 방법이다. 이는 관습에 비해 스트로크를 얻기 위한 시간의 사용이 사회적인 경향을 띤다. 실용적으로 시간을 계획하고 구조화하는 방법으로 요리나 공부하기와 같이 도구를 매개로 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서 스트로크를 받게 된다.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극의 수준은 중간 수준으로서, 비교적 안전한 시간의 구조와 방법이다. 한편 활동은 도구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풍부하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항상 포함하는 것이 아니므로 소외감이 유발될 수 있다.
4) 잡담
잡담(pastime)은 부담이 없는 주제에 대한 정보를 상호교환하는 것으로, 무난한 화제로 깊이가 없는 스트로크를 주고받는 사교적인 시간의 구조화 방법이다. 이는 상당히 안정적인 형태로 스트로크를 요구하는 방식이며, 사실을 중심으로 한 정보의 교환이나 취미나 육아와 같은 일상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잡담은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의 구조화 방법이지만, 상대와 감정이나 마음을 공유하고 나누는 대화라기보다는 단순한 정보교환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잡담은 감정개입 없이 이루어지므로 잡담 이후에 공허함이나 권태감, 실망감을 배제할 수 없고, 이득이 없는 대화가 되기도 하므로 비생산적인 시간의 구조화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5) 게임
게임(game)은 잡담 이상의 인간관계가 필요할 경우, 신뢰와 애정이 있는 진실된 교류를 원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솔직하지 못한 스트로크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타인이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이면적 교류로 시간을 구조화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게임이란 여가선용의 즐거움이나 재미를 주는 활동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교류분석이론에서 게임이란 두 사람 또는 그 이상 집단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심리적 상호교류의 상태이다. 게임은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바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실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다.
게임은 다른 사람과 왜곡된 관계를 맺는 방식이지만 이로 인해 개인은 상당한 스트로크를 얻으며 동시에 자신이 취하고 있는 인생에 대한 입장이 점점 더 확고해진다. 게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자연스럽게 스트로크를 얻을 수 없어 왜곡된 방법으로 스트로크를 구하는 것이 만성화된 경우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게임을 통해서도 스트로크는 충분하게 얻을 수 없으며 결국에는 부족감이나 결핍감을 경험하기 때문에 다시 게임을 하게 되고, 이는 만성화된 관계의 패턴으로 굳어진다.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이러한 게임이 만성화될 수 있다. 번은 게임에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가 하였는데 주정꾼, 빚쟁이, 부부싸움, 파티, 성적 관계 등도 모두 게임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한편 게임은 항상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여러 종류의 다양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화나 계층, 가정에 따라 상이하며 세대 간에 전이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칠 필요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인간관계에서 게임을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6) 친교
친교(intimacy)는 상호 간에 신뢰하며 순수하게 배려하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진실된 형태의 스트로크를 극대화시키는 시간의 구조화 방법이다. 상호 간의 감정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며 상호 간 방어적 자세가 아니라 수용적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 교류분석이론에서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게임처럼 속임수를 사용하지도 않고 서로 간에 소외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형태로 시간을 구조화하는 것이 습관화되면 '자기긍정-타인긍정'의 건강한 기본자세를 가지게 된다.
이상과 같은 시간의 구조화 방법 가운데 철회는 스트로크를 가장 적게 얻는 반면 친교로 갈수록 스트로크를 가장 많이 얻게 된다. 그러나 철회나 관습, 활동, 잡담이 시간을 구조화하는 지배적인 방법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상호 간의 교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는 볼 수 없다. 즉, 지나치게 철회 위주로 시간을 구조화하여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거나 활동 위지로 일중독 상태로 발전되거나 혹은 하루 종일 잡담으로 시간을 구조화하지 않는다면 적절한 철회나 활동, 잡담 등은 모두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 부모교육, 김진경·서주현 /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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