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역할의 개념 및 중요성
성 역할은 한 개인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남자, 여자로 특징 지어질 수 있는 행동, 태도, 가치, 특성의 기대치를 의미한다. 성 역할은 개인의 성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수용되는 행동 양식으로, 일차적으로는 생물학적 근거에 의해 정립되지만 사회문화적 관습이나 문화의 영향도 받는다. 예를 들어 뉴기니의 원주민인 챔불리족의 경우 남성이 정서적으로 의존적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여성은 지배적이고 객관적이며 통솔력이 있다(Mead, 2001).
인간은 출생 후 그 사회의 기준에 맞는 성 역할을 부여받고 배워 가는데 이러한 과정을 성 역할 사회화 또는 성 유형화(gender typing)라고 한다(Shaffer & Kipp, 2014). 성 유형화는 부모가 자녀에게 성별에 적합한 옷과 장난감 등을 제공하는 영아기부터 형성된다. 과거에는 성 역할에 따라 기대하는 행동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심리적 차이를 전제로 출생 후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특정 짓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심리적으로 건강하다고 간주하는 성 역할 고정관념(sex role stereotype)이 강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증하고 남녀 간의 협력이 중요해지면서 성 역할 고정관념은 점차 퇴색하고 있다. 성 역할이 고정된 사람은 유연성이 부족하여 다른 성에 적합한 행동을 수행할 경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성(性)이라는 잣대로 개인의 경험과 기회를 제한하게 됨으로써 잠재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성 역할 고정관점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비판 아래 양성성(androgyny)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Bern, 1974). 양성성은 그리스어로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을 합한 용어로, 하나의 인간에게는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김경옥, 2004). 이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라 개인 안에 공존하며, 심리적인 양성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명승화, 2008).
■ 성 역할의 발달
1. 성 역할 발달 이론
성(性)은 생물적인 성 역할과 사회적인 성 역할로 구분할 수 있다. 생물적인 성역할은 ‘sex role’을 의미하고 사회적인 성 역할은 ‘gender role’을 의미한다. 요즘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개념은 ‘sex role’보다 ‘gender role’이 더 어울린다. 실제로 길리건(Gilligan, 1982)은 성을 ‘gender’로 보고, 구성되고(gendering) 지속적으로 행하여 성취된다고 하였다.
고대의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종족보존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여 공생 및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생산적 및 창조적 기능을 수행하고 문화전승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남성은 여성의 기능을 힘과 자원으로 보호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에는 고대의 성 역할 개념이 그대로 전해 내려와 사회를 지배했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사회구조였고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남성은 권위를 강조하고 사회의 관습을 강조하여 여성을 압제하는 역할로 표현되었다. 현대에는 여성도 참정권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권을 가지면서 여성은 자유를 가졌고 가치와 권리가 보장되었다.
남성은 여성의 가치를 인식하고 새로운 성 역할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성의 권리와 가치 및 역할에서의 자유는 페미니즘 운동에 많은 역할을 했다. 스콧(Scott, 1992)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차별을 낳으므로 성에 대한 재개념화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유아교육에 적용되어 노딩스(Noddings, 1984)는 돌봄(caring)이 여성성의 표현이자 여성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면서 돌봄을 여성성의 표현으로 보았다. 실제로 마틴(Martin, 2000)은 여성의 고유한 영역으로 3C(Care, Concern, Connection)를 제시하면서 여성성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강조하였다. 성 역할의 발달을 설명하는 관점들은 많지만 다음의 몇 가지 관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1) 생물학적 관점
성 역할에 대한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신체의 선천적 특성, 유전적·해부학적 차이, 호르몬의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인 특성이 성차를 만든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남아는 출생 시부터 여아보다 키가 크고 근육량도 많기 때문에 유아기에 더 활동적이고 거친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출생 후의 사회적 요인들도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달라지며 부모와 주변 사람들도 아이의 성별에 기초하여 반응하게 된다(이기숙 외, 2015).
남성과 여성의 호르몬은 생물학적 성별 구분의 중요한 요소이다. 남성은 공격적 행동과 관련이 있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높으며, 여성은 남성에 비해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낮고 에스트로겐 수준이 높다. 이로 인해 남성은 경쟁을 즐기고 모험적인 행동을 하고, 여성은 부드러움을 즐기고 공격적인 행동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모두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가지고 있으며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높고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수준이 높을 뿐이다. 바론코헨(Baron-Cohen, 2003)은 테스토스테론이 언어 능력, 의사소통 능력, 사회적 기술, 눈 맞춤을 증가시키며 테스토스테론이 반드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뇌 구조와 기능도 성차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남성의 뇌는 경쟁을 즐기는 뇌이다(최유리, 2011). 38주가 되기 전에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증가하여 관계, 커뮤니케이션, 정서에 관련된 중추신경계가 위축된다. 공간 또는 사물을 탐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수학적 추론, 도형-배경지각, 공간 테스트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뇌 구조이다. 사물을 만지고 조립하고 분해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물의 기능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고 퍼즐 조립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로 인해 남아가 여아보다 퍼즐을 구성하는 데 두 배 정도 더 빠르고 실수도 적다. 이러한 남아의 행동은 여아에 비해 산만하고 부산스럽다. 즉, 남아의 뇌는 정리하는 것보다 정리를 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실제로 여아에 비해 남아의 활동수준이 높은 것은 산만하고 부산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의 뇌는 유대(relationship)를 즐긴다(최유리, 2011). 여성은 타인을 바라볼 때 얼굴을 살핀다. 여아는 생후 몇 주가 지나면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들을 유심히 살핀다. 이는 여아의 뇌 구조가 감정 표현에 관심이 많고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토대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성가신 존재인지를 알아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의 뇌는 언어 능력, 사회성, 감정이입, 사물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데 뛰어나다.
남성과 여성은 운동 능력에도 차이를 보인다. 사춘기에 호르몬의 변화로 남성은 근육량이 두 배 이상 증가하지만 여성은 주로 지방이 증가한다. 여성은 20~24%의 지방조직과 23%의 근육조직을 갖지만 남성은 12~16%의 지방 조직과 40%의 근육조직을 가진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움직일 근육조직이 남성의 절반 정도이고, 비활동적인 지방이 남성보다 더 많다. 이로 인해 운동능력이 남성에 비해 떨어진다. 즉, 남성은 여성보다 30~40% 정도 더 높은 근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남성이 여성보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
2) 정신분석 이론
정신분석 이론은 유아가 자신을 부모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성 역할을 학습한다고 본다. 프로이트(Freud)는 인간은 성적인 본능을 타고나며 본질적으로 양성의 생물학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남근기가 되면 성 정체성과 성 역할에 대한 선호도가 나타나며, 동성의 부모와 동일시를 통해 성 역할 개념이 발달하는 것이다(이기숙 외, 2015). 즉, 남아는 남근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경쟁심을 갖게 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아버지를 선망하고 동일시하게 되면서 남성성을 강화하게 된다.
반면, 여아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경험하면서 남근 선망과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 여성인 어머니와 동일시하며 여성성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남아와 여아가 성적 애착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 동성의 부모를 닮고 싶어 하는 동일시 과정을 통해 성 역할을 획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부모 이외의 다른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교육인적자원부, 2004)
3) 사회학습 이론
사회학습 이론에서는 유아가 환경 요인을 통해 성 역할을 학습한다고 본다. 즉, 성 역할은 강화와 벌, 관찰과 모방에 의한 직접적인 학습과 훈련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모델이 보여 주는 성 역할 개념을 형성하고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 봄으로써 성 역할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는 사회화 대행자(social agent)가 존재하는데, 이는 유아가 사회의 여러 현상에 적응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사회화 대행자는 또래, 부모 및 성인이 될 수도 있고 사회문화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사회에서 규정되어 있는 성 역할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데 성에 적합한 행동은 강화하고, 부적합한 행동은 처벌하여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성 역할을 유지시킨다. 이 과정에서 유아는 부모의 성 역할 행동을 모방한다.
또한 유아는 동성 부모나 교사, 또래와 같이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모방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성에 대해 기대하는 것과 가치 있는 행동이 무엇인가를 학습하며 적합한 성 역할 행동을 배우게 된다(김경옥, 2004). 예를 들어 남아가 자동차를 갖고 놀면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인형을 갖고 놀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유아는 자신의 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학습하고 성 역할 개념을 발달시키게 된다. 사회학습 이론은 성 역할 발달에 대한 외적 환경을 강조하였으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유아의 내적 사고과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유아를 수동적 존재로 바라보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교육인적자원부, 2004).
사회학습 이론에서의 성 역할 사회화는 모델의 관찰, 관찰된 모델의 행동에 대한 인지적 이해와 이의 시연, 실제 행동으로의 표현, 표현을 통한 내면화의 과정으로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강화와 벌이 제공된다. 학습자가 성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면 강화가 주어지고, 성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면 벌이 주어진다. 사회학습 이론은 모델, 관찰, 시연(rehearsal), 내면화의 과정으로 성 역할을 형성하므로 사회인지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사회학습 이론은 사회문화에 들어 있는 성(性)에 대한 현상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길에서 울고 있는 어린 남아에게 지나가는 성인이 “남자는 울보가 되면 안돼. 씩씩해야 남자지”라고 하면서 팔을 들어 올려 뽀빠이처럼 알통을 만들어 보이는 시늉을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성인이 남아의 사회화의 대행자로서 사회문화가 유아에게 남자는 울지 않아야 하고 씩씩해야 한다는 것을 강화하는 것이다.
유아가 성 역할을 사회적 상황에서 배우는 것은 모델의 영향도 크다. 학습자에게 모델은 닮고 싶은 대상이다. 모델의 다양한 역할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역할시연(rehearsal)이 이루어지고 내면화되어 성 역할 정체성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모델의 중요성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강화이다. 모델이 강화를 받는다면 모방될 확률이 높다. TV의 주인공이 TV에서 보상을 받는다면 이 행동을 보는 관찰자가 실생활에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반두라(Bandura)의 주창처럼 모델이 보상을 받는다면 성 역할 정체성을 형성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 유아사회교육, 김희태·김경희 /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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