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성 발달
인간은 태내에 잉태되어 출생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변화과정을 겪으면서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에 불과했던 어린 영아는 기고 걷고 말하고 친구들 사귀며, 마침내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적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자라면서 그 사회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나 행동을 습득해 나가는 사회화 과정을 밟는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고 그 사회에 필요한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삶의 초기에 영아는 부모나 돌보는 사람과 일차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아동 초기에 이르면 형제, 친족 친구, 및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면서 사회적 세계를 더욱 넓혀 가며, 가족이나 집단 및 문화에 어울리는 태도, 행동을 익히게 된다. 이처럼 한 개체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합한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사회화'라 지칭한다. 이런 사회화 과정에서 영아는 자기와 타인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여러 심리적 특성을 분화, 발달시키고 이런 특성들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시켜 나간다.
(1) 사회와의 초기 접촉 : 청각과 신체접촉
태아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청각을 통해 외부세계에 반응한다. 출생 전부터 영아의 청각은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으며, 출생 직후에도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청각기억이 있는 것 같다. 목소리에 담긴 정서를 느끼고 말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이 뇌의 성숙과 더불어 어떻게 진행되는가는 명확히 밟혀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어린 시기 때부터 영아는 청각을 통해 외부세계에 반응한다. 그런 반응을 통해 소리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여 참조적 기능으로 사용한다. 또한 출생 후에도 영아는 청각발달 정도에 따라 사회와 계속 상호작용하면서 적응해 나간다. 이처럼 생의 초기부터 외부세계와의 연결통로 역할을 하는 청각은 사회화 과정의 주요 요인이 된다.
DeCasper와 Fifer(1980)에 의하면 출생한 지 몇 시간밖에 안 된 신생아는 엄마 목소리를 알아챘다. 또한 출산 전의 엄마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는 태아들도 엄마 목소리와 또 다른 비슷한 목소리를 변별하는 추상적 기억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히 신생아는 태내에서 들었던 문장을 듣는 것을 더 선호하였다(DeCasprt & Spence, 1986). 이처럼 청각은 뱃속에서부터 상당히 발달되어 있어 외부세계와 접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도구가 되는 것 같다.
한편, 영아는 엄마와의 신체접촉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세상을 인식해 간다. 신체접촉은 촉감각(tactile)과 근육감각(kinesthetic) 둘 다를 포함한다. 엄마와의 신체접촉은 어린 영아가 세상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일차적인 도구로서 영아의 전반적인 신체·심리적 발달에 토대가 될 수 있다. 특히 어린 영아는 신체접촉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엄마의 의도를 파악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따라서 영아기의 신체접촉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특징은 영아의 사회성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Stack, 2001; Greenough, 1990). 최근에는 신체접촉을 통해 미숙한 영아의 신체발달을 촉진시키는 마사지 치료나 캥거루 케어 등의 치료 프로그램의 효과가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체접촉은 영아기뿐 아니라 아동기, 청년기, 성인기 등 전 생애를 걸쳐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일차적 대인간 의사전달의 기능을 하며, 심리적 안정에 필요한 정서적 지지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신체접촉이 갖는 의미는 계통발생학적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대인간 연결을 이끄는 기능을 하고 있다(Schiefenhovel, 1997).
(2) 자기(self)의 발달
영아의 사회적 발달은 영아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능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 발달과정을 의미한다. 사회학자 Mead(1934)에 따르면 자기개념은 사회적 상호작용으로부터 발달하며, 일생 동안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영아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하여 자신과 타인간 상호작용까지 모두 사회성 발달의 측면으로 간주된다.
▶ 자기에 대한 정의
자기개념은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고 활동적으로 생각하는 '주관적 자기(subjective self)'와 타인과 영향을 주고 받는 '객관적 자기(objective self)'로 구별될 수 있다(Duvall & Wicklund, 1972). 이 두 가지 분류를 기초로 하여 주관적 자기는 '사적 자기(Private self; Scheier & Carver, 1981)', '내재적 자기(implicit self; Case, 1991; Lewis, 1999)' 혹은 물리적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생태학적 자기(ecological self; Neisser, 1991); 등의 용어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객관적 자기는 '공적 자기(public self; Scheier & Carver, 1981)', '외재적 자기(explicit self; Rocaht, 2002)' 혹은 '사회적 자기(social self)' 등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영아의 자기개념은 내재적 자기가 먼저 발달하며, 이를 기초로 외재적 자기가 발달한다. 내재적 자기개념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영아가 자신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신체 움직임을 통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발달하는 지각적 측면의 자기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정서적 교감을 하며 발달하는 사회적 자기다. 한편 외재적 자기는 일반적인 자기개념을 대표한다.
Jamees(1890)는 자기의 두 가지 기본 개념을 I(나는)와 Me(나를)로 구분 하였다. 'ME(나를)'는 타인을 통하여 확인되고 불려지며,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자기의 측면이다. 즉, Me는 다소 개념적 측면을 지칭하며 명백하고도 외재적인(explicit) 자기 인식이며, 자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식적인 확인 및 재인(인식, recognition)이 없이도 내재적인 측면의 자기가 있는데, 이것이 내현적 자기개념(implicit self concept)이다.
James가 말한 'I'가 바로 이러한 측면의 자기를 지칭한 것으로 '존재적 자기(existential self; Lewis & Brooks-Guss, 1979)'나 '내재적 자기(Case, 1991)'로 표현할 수 있다. 예컨대 영아가 자기 주변의 사물에 대해 손을 뻗치거나 잡으려고 할 때 자신이 하는 신체의 움직임이 내재적 자기를 느끼게 해 준다. 영아는 내재적으로 자신이 외부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환경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고 표현한다(Rochat, 1997).
한편, Neisser(1991)는 내재적 자기를 양분하여 물리적 영역(환경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에서의 자기로 구분하였다. 내재적 자기 중 물리적 영역에서의 자기는 생태학적 자기(ecological self)며, 사회적 영역에서의 자기는 대인적 자기(interpersonal self)다.
대인적 자기는 영아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시켜 나가는 자기로서, 특히 자신과 타인과의 상호적 관계 전개를 통해 이루어진다. 물리적 영역에서의 자기는 영아가 외부 사물이나 외부 대상에 대해 행사하는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과 그로 인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탐색을 통해 발달시키게 된다(Rochat, 1998; Rochat & Morgan, 1995).
▶ 성 개념의 발달과 범주적 자기
일단 영아가 자신이 타인과 분리되어 있음을 알고 나면,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주목하고 그 차원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류를 '범주적 자기(categorical self)'라고 한다. 연령은 영아가 인식하여 자기개념 속으로 받아들이는 최초의 사회적 범주 중 하나다. 성은 영아가 매우 일찍부터 인식하고 반응하는 또 다른 사회적 범주이다. 9~12개월밖에 안 된 영아도 사진 속의 낯선 여성과 남성을 쉽게 변별할 수 있으며, 여성에게 좀더 미소짓는 경향이 있다(Brooks-Gunn & Lewis, 1981). 엄마와 아빠, 소년과 소녀와 같은 성별 명칭(gender labeling)을 아는 2~3세 영아는 비록 자신의 성 정체감(gender identity)은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진에서 본 사람들의 성을 구분할 수 있다(Brooks-Gunn & Lewis, 1982; Thompson, 1975).
(3) 친사회성 발달
친사회적 행동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동으로서 친구에게 자기 소유물을 나누어 주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거나, 자기 자랑보다는 남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의 복지 증진에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Hay, 1994).
▶ 이타적 행동
친사회적 행동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타적 행동인지 아닌지를 구분한다. 즉, 같은 친사회적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동기가 무엇이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면 모두 이타적 행동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때의 이타적 행동은 친사회적 행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영아와 아동의 이타심에는 곤경에 처한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적 또는 동정적 정서가 작용하고, 수혜자가 자신과 가까운 사이일 때 더욱 증가한다(Clark, Powell, Ovelletle & Millberg, 1987). 문경에 처한 사람을 위로하고 또 관심을 갖는 행동은 아동기에 더욱 자주 발생한다(Eisenberg, 1991).
▶ 감정이입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이 슬퍼하면 자신도 슬프고 상대방이 행복해하면 자기도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다. 감정이입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역할수용이 있다. 역할수용이란 다른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지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는 하지만 반드시 자신도 그와 똑같이 느낄 필요는 없다.
(4) 공격성 발달
영아기 공격성에 관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생후 1년이 될 때까지는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래를 향한 공격은 첫해 끝 무렵에 나타난다. 6개월 된 영아는 다른 또래 아이들이 자신의 물건을 집어가거나 공간을 침범해도 싫어하지 않지만(Hay, Nash, & Pedersen, 1983), 12개월된 영아는 또래가 화나게 하면 저항하고 공격적인 보복을 한다(Caplan, Vespo, Pedersen, & Hay, 1991).
생후 1년경이 지나면 영아들은 그 또래와 함께 있을 때 도구적인 공격성을 나타내기 시작한다(Eron et al., 1983). 그들 대부분의 관심은 장난감과 소유물에 있고 또래에게 공격적 행동을 보이게 된다. 가끔 성인이나 나이가 많은 아동에게 공격적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특성이 자주 나타나지는 않는다.
(5) 정서조절 : 사회인지의 초기 출현
출생 직후의 신생아들은 정서적 상태를 조절하는 제한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불유쾌한 자극으로부터 몸을 돌리고 감정이 격할 때는 손가락을 빠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내적 · 외적 자극에 의해 쉽게 당황하게 된다. 정서를 조절하거나 통제할 전략을 잘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불쾌한 자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돌아서거나 혹은 대상을 활기차게 빨아봄으로써 적어도 자신의 부적 각성을 감소하려 한다(Mangelsdorf, Shapiro, & Marzolf, 1995).
대뇌 피질의 급속한 성장은 자극에 대한 영아의 인내심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생후 4개월경에 나타나는 주의집중능력도 자극을 통제하도록 돕는다. 일반적으로 유쾌하지 못한 사건으로부터 몸을 쉽게 돌릴 수 있는 영아들은 어머니에게 화를 적게 내고 더 쉽게 달래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Johnson, Posner, & Rothbart, 1991).
첫돌 무렵 기고 걷는 행동이 가능해지면 영아는 다양한 자극에 접근하거나 후퇴함으로써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서를 조절한다. 또한 영아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흔들거나, 대상을 씹거나, 자신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이나 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오는 것과 같은 전략들을 발달시킨다(Kopp, 1989; Mangelsdorf et al., 1995).
18~24개월 걸음마기 영아는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이나 대상의 행위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더 높아진다(Mangelsdorf et al., 1995). 2세가 지나면 영아는 그들의 정서나 감정을 자주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통제하기 위하여 능동적인 노력을 한다. 그들은 눈이나 귀를 가림으로써 더 이상의 감각적 유입을 차단하고, '엄마는 곧 돌아오실 거야'라고 혼잣말을 하거나 목표를 변경함으로써(또래들이 놀이에 끼워주지 않을 때 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서적 각성상태를 무디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감정폭발을 조절시킬 수 있다(Thompson, 1990).
< 한국영아발달연구, 곽금주·성현란·장유경·심희옥·이지연·김수정·배기조 / 학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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