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후 영아는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이므로 부모의 책임이 이 시기 동안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부모의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은 영아와 애착을 형성하는 것으로, 안정애착 형성에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생후 초기 경험은 이후의 전인격적 발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많은 연구들에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 동안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영아와 시간을 보내는 부모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영아기에는 부모와 영아의 상호작용의 질이 매우 중요한다, 영아기의 부모역할은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양육자
아기가 태어나서 생후 1년간은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부모는 영아의 수면과 수유 및 배설 등 모든 것을 보살펴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양육자로서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영아는 적은 양을 자주 먹고 어떤 영아는 많은 양을 한번에 먹기 원한다. 또 어떤 영아는 기저귀에 소변이 몇 방울만 묻어도 불편해하는가 하면, 어떤 영아는 밤새 기저귀가 젖어 있어도 잘 잔다. 그러므로 영아의 개인 특성과 요구에 부모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영아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몸에 이로운 음식을 제공받아야 한다. 생후 1년간 영아에게 모유가 중요하다고 밝혀졌는데, 모유는 성장에 알맞은 필수적인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성분도 달라진다. 모유에 있는 락토스, 콜레스테롤, 타우린 성분은 뇌세포 성장을 촉진하고, 모유를 먹는 영아는 어느 정도 먹어야 할지를 스스로 조절하여 비만이 될 위험이 낮다고 보고되고 있다.
또한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는 유방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도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모유 수유는 어머니와 영아의 정서적 유대관계 형성에 기여하며, 영아의 심리적 건강을 돕는다. 모유를 먹는 동안 영아는 어머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기본적 신뢰감의 바탕이 된다.
한편 영아의 안전을 배려한 물리적 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영아기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다. 영아가 성장하여 이동능력을 갖추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이 시기에 부모는 자녀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자녀에게 안전한 환경을 마련함으로써 이 시기의 발달과업인 자율감 성취를 위한 자유로운 탐색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2) 기본적 신뢰감 및 애착 형성의 조력자
에릭슨은 영아기의 기본적 신뢰감 대 불신감의 형성기라고 제시하였다. 영아기에 부모가 일관성 있고 민감하게 영아의 욕구에 반응하면 영아는 부모에 대해 안정애착을 형성하면서 기본적 신뢰감을 가진다. 신뢰감은 양육자에 대한 긍정적 감정인 애착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반대로 부모가 일관성 없고 무관심하게 영아를 돌보는 경우에는 타인에 대해 불신감을 발달시키며, 불안정애착 형성을 초래한다. 영아의 애착은 6~9개월경에 시작되어 12~13개월 정도가 되면 부모 모두에게 똑같은 수준의 애착을 형성한다. 한 연구(Ross, et al., 1975)에 따르면 아기가 아버지와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기의 기저귀를 일주일에 몇 번 갈아 주었는가와 밀접한 상관이 있다고 하였다. 즉, 아버지가 자녀양육에 참여하고 아기와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할 경우에는 애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영아기의 애착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애착은 영아와 양육자 간의 친밀하고 강한 정서적 유대관계로, 영아는 양육자와 상호작용을 하며 기쁨을 느끼고 괴로울 때 위로받는다. 부모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안정애착을 형성한 영아는 어머니를 안전기지로 삼고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 애착이론에 의하면, 영아기에 형성된 양육자와의 관계가 이후에 대인관계의 지침이나 각본이 되는 내적 모델로 작동한다. 영아기에 부모와 형성한 안정애착은 이후 생애 전반에 걸쳐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 부모가 영아의 신호와 요구에 대해 즉각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면, 영아는 부모를 신뢰하고 자신을 조절하게 된다. 영아가 부모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자신의 욕구를 참고 조절할 줄 알게 된다. 반면, 부모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하면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좌절감으로 자주 울고 화를 내는 등 자기조절이 어려워진다.
영아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아가 얻고자 하는 관심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 영아는 관심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서 실제로 만족할 줄 모르게 된다. 반면, 민감한 관심을 충분히 받은 영아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을 형성하고 양육자에 대해 안정애착을 발달시킨다. 따라서 영아기의 부모는 영아가 기본적 신뢰감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애착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자극 제공자
인간은 선천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나며 주변 환경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새로운 정보를 획득해 나가려고 한다. 영아는 주위의 모든 사물에 호기심을 보이며 탐색하고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한다. 피아제는 영아기를 감각운동기라고 지칭하면서, 영아기에 풍부한 감각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감각운동 능력을 촉진할 수 있도록 흥미롭고 자극이 되는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시기는 감각기관을 이용해서 세상을 이해하므로, 부모는 영아가 오감을 이용해서 외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한두 가지 감각에만 편중하거나 문자교육에 너무 일찍 노출시키면 오히려 많은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가정환경을 측정하는 HOME(Home Observation for Mesurement of the Environment)는 1세부터 3세까지의 영아의 지능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Bradley et al., 1989). 이는 영아기에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이 영아의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부모는 영아에게 흥미 있고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영아가 스스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험하고 탐색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영아가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학습할 수 있도록 오감을 자극하는 풍성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하겠다.
4) 자율성 발달의 조력자
영아는 점차 스스로 먹고, 대소변을 가리고, 옷을 입을 수 있는 능력인 자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자율감의 증가로 인해 영아는 "싫어" "안 해" "내 거야" 등의 반항적인 언행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고집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시기를 '제1반항기'라고도 한다. 또한 생후 1년 정도 되면 영아는 이동능력이 발달하고 언어로 의사표현을 간단히 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영아는 주위 세계를 활발하게 탐색하고자 하면서 이를 저지하려는 부모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부모가 영아의 요구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 주위를 탐색하도록 허용하고 격려해 주면 영아는 자율성을 발달시키게 된다. 부모가 영아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간섭하면 수치심이 생기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영아의 능력에 맞는 일을 스스로 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긍정적으로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자율성 발달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단, 이 시기에 영아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주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영아의 행동에 대해 명확한 한계를 설정하고 애정적인 태도로 일관성 있게 지도하는 것이 영아의 자기통제력 함양에 기여할 수 있다.
5) 의사소통 촉진자
영아기에 획득하는 중요한 발달과업의 하나는 의사소통의 발달이다. 언어를 배우기 전 영아는 울음이나 옹알이 등으로 자신의 희사를 표현하는데, 이때 민감한 어머니는 적절한 때에 자극을 주며 그 반응을 파악한다. 영아는 비록 정확한 단어의 뜻은 모를지라도 부모가 표현하는 말의 억양이나 표정을 통해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부모는 영아가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나 대상, 소유물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여 언어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부모는 영아의 기본개념 형성을 위하여 언어적 상호작용을 통해 사물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 사물의 이름과 그 사물이 가진 특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영아가 말할 때 강화한다. 부모는 자녀의 능력에 대해 신뢰하고 대화하는 태도가 중요하며, 올바른 언어 모델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 영아기 부모를 위한 실제적 제안 ◆
- 자주 안아 주고 이야기해 주며 노래를 불러 준다.
- 영아가 울면 즉각적이며 지속적으로 반응한다.
- 식사, 취침, 놀이시간 등에 대해 영아가 예측할 수 있는 시간표를 정해서 실행한다. 단, 영아의 상태를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적용한다.
- 영아의 발달상황에 적합한 자극을 제공한다.
- 언어학습이 민감하게 이루어지도록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반복해서 제시한다.
- 안전한 환경을 마련한다.
- 놀이와 탐색을 위한 공간과 장난감을 제공한다.
- 간단한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영아가 자해를 하거나 사물을 파괴하지 않는 한 기질적인 짜증은 무시한다.
- 영아가 스스로 하도록 하여(식사, 옷 입기 등) 독립심을 가지게 해 준다.
- 힘겨루기를 피한다.
- 영아가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 배변훈련을 시작하고, 실수하더라도 혼내지 않으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영아는 아직 물건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 반복, 설명, 본보기 등으로 언어발달을 돕는다.
출처 : Hamner & Turner(2001). Parenting in contemporary society
6) 영아기 부모의 자신 돌보기
자녀의 탄생은 부부에게 새로운 역할변화를 가져오는데, 그중에서도 영아기 부모는 양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렵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일은 24시간을 근무하는 것과 같아서 수면과 식사, 일하고 쉬는 시간이 아기의 시간에 따라 바뀌게 된다. 초보 부모가 가지는 문제는 익숙하지 않은 자녀양육에서 오는 피곤과 탈진, 수면부족, 부모로서의 부적절감, 거의 불가능한 가사활동 유지, 속박되었다는 느낌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느낌과 어려움이 계속되면 산후우울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대개 가벼운 정도의 우울증인 산모 우울은 1~2주일 정도면 지나가지만 산모의 10% 이상은 빨리 회복되지 못하고 몇 개월 동안 지속되는 산후우울증이라 불리는 심각한 우울반응을 경험한다. 산후우울증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신생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머니가 우울하고 위축되고 무반응적이면 영아는 자신의 요구가 무시당하기 때문에 불안정애착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산후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한 어머니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고, 남편과 주위 가족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부모로서의 새로운 역할과 첫 아이가 생김으로써 일어나는 일상행위, 역할과 관계 등의 변화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따라서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받고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결국 영아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부모교육, 김진경 · 서주현 /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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