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물학적 원인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신경적 또는 생화학적 요인이나 이 요인들의 결합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또 인간의 신체와 행동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도 확실하다. 따라서 특정한 정서 및 행동장애의 원인으로 생물학적 요인을 찾는 것은 타당하지만 특정 생물학적 요인과 정서 및 행동장애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정서 및 행동장애의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두뇌장애, 유전, 그리고 기질이 있다.
1. 두뇌장애
두뇌장애(brain disorders)를 갖는 많은 사람이 정서와 행동의 문제를 갖는다. 두뇌장애는 비정상적으로 두뇌가 발달하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두뇌손상에 의해 두뇌의 구조나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여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두뇌장애가 정서 및 행동장애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정서·행동장애 아동의 두뇌장애나 두뇌손상의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 유전
정서 및 행동장애의 일부 형태가 유전과 매우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있다(Weiner, 1999). 대표적인 것이 정신분열증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 보면 첫째,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두 아동 모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이 높다. 둘째, 이러한 높은 일치도는 일란성 쌍둥이가 따로 떨어져 사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정신분열증의 유일한 요인이 유전인 것은 아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사람(일란성 쌍둥이)이 모두 정신분열증을 앓을 가능성은 50% 미만이다. 이러한 결과는 정서 및 행동장애의 일부 행동이나 특성이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도 환경적 요인에 따라 그 증후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3. 기질
일부 연구자들은 모든 아동은 생물학적으로 특정 기질을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기질에 대해 보편적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우나, 기질은 한 개인의 행동유형이나 자극에 대한 반응유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아기는 별로 울지 않지만 웃기는 잘 하는데 이러한 아동은 편한 기질을 타고난 아기이다. 반면 어떤 아기는 쉽게 혼란스러워하고 까다로우며 새로운 환경에 가면 쉽게 위축이 되는데 이러한 아동은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
아동이 타고난 기질은 성장하면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될 수도 있으나 어떤 기질은 변하지 않는다. 편하고 긍정적인 기질을 가진 아기는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으나,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아기는 성장하며 행동문제를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모든 까다로운 기질의 아동이 모두 정서 및 행동장애를 갖는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난 아동이 자라면서 잘 다루어졌거나 또는 편한 기질을 타고난 아동이 자라면서 잘 다루어지지 않은 경우 그 결과는 아동이 타고난 본래의 행동유형과는 아주 다를 수 있다.
■ 정신역동적 요인
이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정서 및 행동장애가 아동기의 불안이나 심리적 방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며, 이들 대부분이 무의식적인 것으로 본다. 아동이 자라면서 지각한 분위기나 사건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현재의 아동의 행동을 통제한다고 믿는다. 즉 아동이 지각한 정서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특히 아동(심지어는 임신기조차도)에 대한 부모의 태도, 가족 분위기, 아동기의 외상적 사건들을 중요한 원인으로 본다.
정서 및 행동장애에 정신역동적 요인을 강조하는 견해는 베틀하임(Bettleheim)의 4세 여아에 대한 다음의 기술에서 잘 알 수 있다. 이 아동은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병 아동이라고 할 정도로 행동이 거칠었다. 이 아동의 주된 문제는 안경을 낀 사람을 보면 달려가 안경을 빼앗고 짓밟아 부러뜨리는 것이었다. 베틀하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아동은 자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동의 어머니는 경계선 정신분열증 환자로 병원을 들락날락하였기 때문에 아동이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의 엄마는 안경을 썼다. 아동은 엄마가 잘 보기 위하여 안경을 쓰기 때문에 만약 자신도 안경을 쓰면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세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경을 써 보자 정상적 시력을 가진 아동이었기 때문에 세상이 오히려 전보다 더 안 보였다. 이것이 아동을 격분시켰다. 아동을 화나게 한 것은, 다른 사람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잘 볼 수 있는데 자신은 불공평하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와 같이 심한 정서 및 행동장애아동의 장애원인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스키너(Skinner) 등의 행동주의자들은 이러한 정신역동적 요인이 장애행동을 설명한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반박한다.
■ 환경적 요인
정서 및 행동장애의 원인을 환경적 요인에 두는 이론에서는 인간을 환경의 산물로 파악한다. 도지(Dodge, 1993)는 품행장애와 반사회적 행동발달에 기여하는 환견적 요인으로 해로운 조기 양육환경, 취학하였을 때 경험하는 공격적 행동 패턴과 또래로부터의 사회적 거부를 들고 있다. 이후 많은 연구들은 도지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데 행동 및 정서장애의 원인을 제공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정, 학교, 지역사회이다.
1. 가정
가족은 아동의 초기발달에 깊은 영향을 준다. 특히 핵가족의 경우 부모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따라서 아동이 초기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갖는 여러 경험이 정서적 문제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부모-자녀의 상호작용 유형을 관찰하고 분석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보면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대하고 자녀의 욕구에 민감하고, 자녀의 바람직한 행동을 칭찬해 주고 관심을 갖는 경우 긍정적인 행동특성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간의 연구들은 한결같이 반사회적인 아동은 부모가 일관성이 없고, 행동문제를 다루는 데 일관성이 없고, 거칠고 과도한 처벌을 하며, 자녀와 친사회적 활동을 하는 시간이 적은 가정의 아동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동의 욕구에 대한 부모의 민감도, 아동의 잘못된 행동을 다루는 방법, 적절한 행동에 대한 강화 등에 따라 아동의 행동은 달라진다. 바람직한 행동에 적절히 강화해 주는 것이 아동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거칠고 일관성이 없을 경우, 공격적인 아동, 비행아동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
부모와 아동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라기보다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므로 정서 및 행동장애 아동의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의 양육, 훈육태도의 경우를 보아도 부모가 사용하는 방법이 아동의 기질적 특성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자녀의 행동문제로 부모를 비난하기보다는 문제행동을 방지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부모와 자녀 간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부모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2. 학교
가정을 제외하면 학교는 아동이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장소이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아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어떠한 요소가 문제행동에 기여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어떤 아동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정서 및 행동장애의 문제를 나타내지만 어떤 아동은 학교 입학 후에 문제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정서 및 행동장애의 문제를 갖고 있던 아동도 학급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더 악화되기도 하지만 나아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학교에서의 경험이 아동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요인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요인들이 어떻게 아동의 정서 및 행동장애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구체적 관계는 밝히기 어렵다.
몇몇 연구자들은 아동의 기질과 사회적 자신감이 그의 급우와 교사의 행동과 상호작용하여 정서적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즉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갖고 있던 기질에 문제가 있었고, 또 학업의 성공과 사회적 성공에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면 급우와 교사의 부정적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그러한 아동은 다시 급우나 교사에게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러면 상대방에게서 다시 부정적 반응을 받는 순환적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학교는 정서 및 행동장애의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악화시킬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교사의 태도인데 교사가 아동의 욕구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아동에 대해 너무 높거나 지나치게 낮은 기대를 가지는 경우, 아동을 위한 규칙이나 규범이 일정하게 지속적이지 않고 교사의 편의대로 변화하는 경우 등이다. 학교에서의 훈육방법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느슨한 경우,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또 아동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관심을 받지만 지나치게 올바른 행동을 하였을 때에는 무시된다면 이것도 아동의 정서 및 행동장애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3. 지역사회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또래와 관련이 있는 아동을 조사해 보면 이들은 지역사회에서나 학교에서 또 다른 문제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범죄조직의 구성원, 약물이나 알코올 남용, 일탈된 성적 행동은 반사회적 생활유형을 발달시키고 유지하게 하는 지역사회의 여러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십대 어린 소녀들의 원조교제와 같은 비행은 이를 악용하는 지역사회의 성인에 의해 증가된다.
4. 문제행동 발생경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동의 정서 및 행동장애의 결정적 원인이 되는 단일 요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행동문제는 다양한 가족, 이웃, 학교, 사회적 위험요소 등에의 노출이 누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서 및 행동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요소는 다양한데, 이러한 위험요소가 많을수록 그리고 그러한 위험요소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수록 부정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위험요소들의 상호작용은 복잡하고 각 요소들의 구체적 기여도는 언급하기 어려우나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요소들에 대한 정보는 예방 프로그램의 계획이나 실행에 필요하다. 교사들은 효과적인 중재나 치료가 문제행동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동의 과거에 있었던 여러 원인들이 현재의 문제행동에 기여하는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우며 불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아동의 문제행동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구체적 원인을 알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특수아교육, 송준만 · 유효순,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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