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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철학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문화

by ⍣Humpback whale⍣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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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의 특징

중세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1453년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까지의 약 1천 년에 걸친 시기를 말한다. 거대한 로마제국은 이탈리아, 이베리아반도, 북아프리카를 통치하는 서로마제국과 소아시아 지역을 통치하는 동로마제국으로 서기 395년에 분리되었다가 서로마제국은 476년, 동로마제국은 1453년에 멸망하였다. 문화사적으로는 529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아테네 대학이 폐쇄된 때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한 때를 말한다.

 

교육사에서는 중세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전기를 암흑 시대(dark age, 4~10세기)로 부르는데 이는 르네상스의 문예부흥 시대를 강조하려는 것에서 나온 편견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중세는 정치적으로는 봉건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지방분권, 경제적으로는 장원제도, 사회윤리적 지침이나 정신적 측면에서는 기독교 문화를 지니고 있다. 중세는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기독교 문화를 표방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기독교가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게르만족의 교화와 교황권의 구축으로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도원이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둘째, 봉건국가의 형성이다. 봉건제도와 장원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봉건국가는 봉건영주가 성(城)에 살고 있는 농민들을 보호하면서 세금을 받는 작은 국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셋째, 사라센 문화의 유입이다. 아시아 민족은 중세 이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특히 중세에는 사라센 제국과의 교류로 인해 문화가 발달하였다.

 

넷째, 시민계급의 형성과 세속교육이다. 시민계급은 중세에 나타난 사회계층으로 무역을 통해 경제를 주도하였다. 1096년부터 약 2백 년에 걸쳐 실시되었던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교황권이 실추되고 아울러 성직자와 귀족의 권한도 약화되었다. 반면 동방과의 무역과 문화교류를 통해 상인들이 자본을 축점함으로써 길드(guild)라는 조합을 형성하면서 새로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세속교육은 시민계급의 교육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하나의 방도가 되었다.

 

1) 수도원 제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국교가 된 기독교가 세속화됨으로 인해 혼란한 세상으로부터 떠나고 싶은 충동, 그리스도의 명령 등 신앙에 따라 고립된 은둔생활을 추구한 자들이 금욕생활을 추구하고 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수도원이 나타났다. 수도사(monks)들은 수도원에 모여 함께 생활하면서 청빈하고 순결하며 복종을 맹세하고 인격적인 성화(聖化)를 추구하였다.

 

수도원은 3세기 말 이집트의 안토니우스(St. Antony, 250~355) 수도원을 시작으로 유럽으로 퍼졌으며(Painter, 1993), 베네딕트(St. Benedict, 480~543)가 73계율을 마련하면서 정착하였다(조규남, 1991). 수도사들은 수도원 생활에서 묵상과 고행을 하면서 신학, 철학, 과학 등을 공부하였는데 이는 중세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중세의 수도원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신앙훈련이다. 수도사는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육체적인 욕구를 거부하고 고난훈련 등을 통해 개인의 신앙을 완성하고 세속과 자신을 구별하여 신앙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둘째, 교육과 연구이다. 수도사들은 자유 7과목이라고 불리는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천문, 음악을 공부하였다. 이 가운데 문법, 논리학(변증법), 수사학은 필수였고, 기하학, 산수, 천문학, 음악은 선택이었으며, 신학, 철학, 과학도 공부하였다. 수도원 교육은 신학 지향적이었지만 수도원은 당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셋째, 사회봉사이다. 수도원은 자급자족의 공동체 의식과 육체적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일을 하였다. 또한 수도원은 사회의 중요한 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시계제조 기술이나 음악 등과 같이 중세 문명의 발달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정신이상자들의 치료에서도 수도원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봉건제도

봉건제도(feudalism)는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 유럽에 나타난 제도로 영주와 농노 사이의 경제체제와 영주와 기사 사이의 국방체제로 구성되는 것으로 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제도이다. 기사는 영주에게 복종하고 평민들은 수확의 일정량을 영주에게 바쳤는데, 이로 인해 영주는 힘을 가지게 되어 국가가 출현할 때까지 작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이 시대의 봉건제도는 첫째, 영주로부터 봉토(封土)를 받는 주종관계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의 봉건제도, 둘째, 장원제도 혹은 영주제도인 사회경제적 측면의 봉건제도, 셋째, 사회 전체를 지칭하는 봉건제도로 구분될 수 있다(안상원, 1988).

 

2.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부터 16세기에 유럽에서 나타난 문화운동으로 학문이나 예술의 부활 및 재생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humanism)에서 휴머니즘이라는 말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에서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뜻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에서 시작된 것으로 인간이 지니는 가치, 즉 인간의 창조성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즉, 인문주의(humanism)는 중세의 억압적이고 예속적인 인간상에서 벗어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상실되었던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으로(Hay, 1988) 인간성을 존중하고 문학적 교양의 발전을 지향하였다.

 

르네상스는 중세 말엽의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성직자와 교회가 부패하면서 가톨릭의 정신적 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태동하였다. 약6백 년 이상 이어진 중세는 신(神) 중심의 세계관과 봉건제도로 인해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상황에서 교회에 맹목적으로 복종하고 권위주의에 대한 추종에서 벗어나 인간의 선천적인 모든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켜 인간 중심 문화를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르네상스로 연결되었다.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은 중세의 암울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본받아 문화를 꽃피우자는 것으로 문화와 예술 및 정치, 과학 등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에 의해 이루어진 예술 분야의 발전은 르네상스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인쇄술도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지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르네상스 당시에는 새로운 개화기, 혹은 암흑에 대한 광명의 승리라는 말을 사용하다가 르네상스라고 이름 붙인 것은 18세기쯤이다(Schwobel, 1971). 이러한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정치, 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끼쳐 ‘서양문화의 어머니’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본래 의도했던 목적과 달리 고전문학의 학습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았고 라틴어 학습을 목적으로 하는 폐단도 낳았다. 이로 인해 실학주의에서는 반언어주의적 교육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 유아교육철학 및 교육사, 김희태·정석환,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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