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의 철학적 기초 - 철학과 교육과정

▶ 교육과정의 원천으로서의 철학

고대 그리스에서 ‘지혜의 사랑’에 관한 학문으로 출발한 교육학은 교육철학을 이루게 된다. 교육철학은 교육의 본질에 관한 학문으로 철학적 방법과 철학적 수준에서 교육의 기본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또한 교육철학은 교육학의 한 분야로서 교육현상이나 사상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인 측면, 규범학적 측면 등에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교육과정 학자들에게 학교와 교실을 조직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첫째, 철학은 학교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즉 학교교육의 목표, 내용과 내용의 조직, 교수-학습의 과정, 그리고 학교와 교실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경험과 활동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둘째, 철학은 어떤 과목에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등에 관한 해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떤 비인지적 활동들을 활용할 것인가, 어떤 과제를 제시할 것인가와 어느 정도의 과제를 부과할 것인가,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Ornstein & Hunkins, 2009).

 

교육과정의 조직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목적과 내용이 학교나 행정가의 철학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철학은 교육과정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철학은 교육과정을 결정하고 구성하는 작업의 첫 시작이며 이후 교육과정과 간련하여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을 위한 기본 토대를 제공한다.

 

▶ 교육과정 연구에서 철학의 기능

교육과정 연구에서 철학의 기능은 첫째, 교육과정 개발의 기본 토대 혹은 출발점이며, 둘째, 교육과정 개발에 상호작용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기능 중 하나이다. 듀이(John Dewey)는 ‘철학의 과업은 학교의 목적과 방법을 위한 이론적 틀을 제공’ 해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듀이에 의하면 교육은 여러 철학적 입장이 구체화되고 설계적으로 검증되는 실험실이다.

 

이와 달리 타일러의 교육과정 이론에서는 철학적 교육목표를 선택하는 데 작용하는 다섯 가지 기준 중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철학과 또 다른 기준들은 학습자에 대한 연구, 사회에 대한 연구, 교과 전문가의 제언, 학습심리학 등이다. 철학은 좋은 삶과 좋은 사회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철학은 “학교교육에서도 민주주의적 가치를 강조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학교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논의할 수 있고 교육과정의 철학, 목적, 그리고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 주요 철학이론

▶ 관념론

관념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주요 개념으로서 도덕적·정신적 실재를 강조한다. 진리와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마음과 관념의 세계는 영원하고 질서 정연한 것이며 완벽한 질서를 나타낸다. 관념은 변화되지 않으며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는 잠재적 관념을 회상하는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의 마음 안에 있는 잠재적 지식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순전히 지적인 과정으로서 학습은 회상과 작업을 의미한다. 교육은 개념적 문제와 관련된다.

 

관념론을 중시하는 교사는 각 교과에 들어 있는 관념이나 개념을 연결하는 교과의 조직원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중요한 주제와 최고 지식의 형식은 개념의 관계를 드러내어 보여 주고 개념을 유기적으로 통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육과정은 위계적인 성격을 가진다. 교육과정의 위계에서 최상위에 있는 것은 가장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을 다루는 학문, 즉 철학과 신학이다. 철학적 지식과 신학적 지식은 시간과 공간, 상황에 걸쳐 광범위한 맥락과 경험에 적용되는 것이다. 수학도 추상적 사고력을 길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역사와 문학 또한 그것이 도덕적·문화적 이상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언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실재론

실재론자는 세계를 사물과 물질에 입각하여 파악한다. 인간은 그의 감각과 이성에 의거하여 세계를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자연에서 유래되며 자연의 법칙에 종속된다. 인간행동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물리적 법칙과 사회적 법칙에 의하여 지배될 합리성을 가진다. 관념론자와 마찬가지로 실재론자는 교육과정은 사물을 구분하는 지식과 내용, 잘 구분된 학과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류의 경험은 역사라는 과목을 구성하고, 동물은 동물학에서 탐구할 수 있다. 관념론자와 마찬가지로 실재론자는 최고로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지식의 과목을 교육과정의 위계상 최상위에 두고 구체적이고 변화되는 지식으로 구성된 과목은 하위에 둔다. 논리학과 마음을 도야시키고 이성적 사고를 연마시키는 훈련이 강조된다. 윤리적 사고, 정치적 사고, 경제적 사고 등과 관련된 개념과 개념체계도 교육과정 속에 포함된다. 세 가지 교과(Three Rs: 읽기, 쓰기, 셈하기)도 개인의 기본교육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관념론자들이 교육과정은 시간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고정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전만을 최고의 교육내용으로 간주하는 데 반해, 실재론자들은 교과 전문가를 중시한다. 관념론자에게 지식은 영원의 이데아나 예술에 들어 있는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서 추출될 수 있는 것인 반면, 실재론자들에게 실재와 진리는 과학과 예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 실용주의

전통적 철학사상과는 대조적으로 실험주의라 부르기도 하는 실용주의는 변화, 과정, 상대성 등의 개념을 기반으로 성립한다. 관념론과 실재론이 교과, 훈련, 내용이나 아이디어 자체를 강조하는 데 반해, 실용주의는 실재가 끊임없이 변화되는 과정 그 자체를 지식으로 간주한다. 학습은 개인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며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얻은 지식은 다양한 주제와 상황에 광범위하게 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학습자와 외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라는 개념이다. 학습자와 외부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되며, 그 사이의 상호작용과 경험도 변화된다. 관념론자처럼 사회적 변화를 무시하고 변화되지 않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실재론자처럼 문화유산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현명하지 못한 것이다.

 

실용주의 교육철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을 인간의 조건을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다. 학교는 사회환경과 다른 것은 아니지만 보다 특수한 환경이다. 학교와 사회 사이의 구분은 사라진다. 학교에서 교육하고자 하는 것은 아동의 경험과 관심을 기본으로 하여 구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며 아동이 자신의 미래의 삶에 대한 관심을 기본으로 하여 구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며 아동이 자신의 미래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내용은 분과학문적인 것이기보다는 간학문적인 것이어야 한다. 잘 조직된 내용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문제해결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사실이나 정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 실용주의자들은 교수와 학습을 과학적 방법에 따라 경험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본다. 학습은 문제해결의 과정에 개인별 혹은 그룹별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이나 문제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대응에 따라 달라진다. 학습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지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그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 실존주의

실용주의가 20세기 시작 바로 전에 미국에서 발생한 철학이라면 실존주의는 20세기가 시작되기 수년 전에 유럽에서 발생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행한 철학이다. 실존주의자는 가르칠 내용을 선택하고, 무엇이 옳은지 결정하고, 그러한 결정을 뒷받침해 줄 기준을 찾기보다는 학습자를 자유롭게 둔다. 교육과정은 체계적 지식이나 구조화된 학문이 아니며, 학생은 다양한 학습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락된다. 학습자는 자신이 배우고 싶은 지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교육내용의 비체계성과 교육내용에 대한 학습자의 자율적 선택이라는 실존주의의 두 가지 원리 때문에 실존주의 교육철학은 초등학교 수준에 적용되기에는 지나치게 비체계적이고 자유방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존주의자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지식은 인간의 조건과 개인이 당면하게 되는 선택상황에 대한 지식이며, 교육은 개인이 선택의 자유, 선택의 의미, 선택의 책임에 대한 인식을 넓혀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실존주의자에게 기준, 관습이나 전통, 영원한 진리 같은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실존주의는 관념론이나 실재론과 다르다. 실존주의에 입각한 교육과정은 개인이 철학적 대화와 선택의 상황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경험과 주제로 구성된다. 이때 선택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정적이고 심미적이며 철학적인 주제가 적합하다. 문학, 드라마, 영화, 예술 등은 인간의 조건과 선택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교육과정에서는 자기 표현활동, 실험, 감정, 느낌, 통찰 등을 예시하는 방법이나 매체가 강조된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각자의 삶과 선택에 관하여 대화하고 논의하는 곳이다.

 

< 교육과정, 홍순정·김재춘 / KNOU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