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7~1827)는 1747년 1월 12일,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5세 때 아버지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어머니와 생활하였다. 신앙이 깊고 의지가 강했던 페스탈로치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성실하게 살았다. 당시 페스탈로치가 살았던 취리히는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독일의 철학, 이탈리아의 예술, 프랑스의 정열을 공유한 고장이었다. 그러나 시민의 권리가 특권층에게 독점되는 등 시민들은 시달림도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프랑스혁명 정신은 스위스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고 목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페스탈로치는 취리히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다가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져 법학을 공부했다.
페스탈로치는 당시 유행했던 루소의 《에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루소의 자연주의적 교육관을 받아들였다. 《에밀》을 통해 페스탈로치는 자연을 통한 교육과 신앙심이 바탕되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빈민들의 구제와 교육에 뜻을 품고 빈민을 위한 교육을 하고자 하였다. 취리히 대학에 재학할 때 민중교육의 보급과 향상을 위하여 사회운동 단체인 ‘애국단’에 가입하여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1768년에 건강이 좋지 않아 부르크도르프(Burgdorf) 근처에서 요양하면서 농촌생활을 하다가 가난하고 힘없는 빈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23세가 되던 1769년, 대학 시절 자신과 함께 운동을 하던 7년 연상인 인나 슐테스(Anna Schultess)와 결혼하여 뮐링겐(Mülingen)에 노이호프(Neuhof)라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촌 및 빈민 아동을 위한 교육에 뛰어들었다. 농사에 실패한 마을의 빈민 자제들을 모아 방직, 노작(과업을 주되 결과를 따지지 않고 과정을 보는 것)과 더불어 교육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페스탈로치는 장남 야곱(Jacob)을 4년간 관찰하며 육아일기를 썼고, 직관을 중시하는 그의 교육원리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페스탈로치의 교육의도를 알아주지 않아 1780년 노이호프를 닫고 자신이 실천하지 못한 교육적 이상을 《은자의 황혼(Die Abendstunde eines Einsiedlers)》에 담았다.
페스탈로치는 약 18년ㄴ 동안 교육활동을 하지 않고 칩거하며 저술작업을 하면서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Lienhard und Gertrud)》를 출판하였다. 악의 추방과 가난의 근절을 주제로 한《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에서 게르트루트의 갱생과정을 통해 그 지역 전체가 가정적 정신에 의해 지주와 목사, 교사의 합심으로 도덕적 환경이 실현된다는 교육활동의 원동력을 제시하였다. 페스탈로치는 정치적·사회적 환경에 복종하는 것보다 개인이 주체적이고 개혁적으로 자각하여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제시하고, 민중이 올바른 지성의 힘을 기르면 자신의 힘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인간학교의 이상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인간발달에서의 자연과정에 대한 나의 탐구(Meine Nachforschungen über den Gang der Natur in der Ent-wicklung des Nebschengeschlechts)》라는 책을 저술하여 인간의 상태를 자연적·사회적·도덕적 상태로 구별하고, 도덕적 인간의 형성을 교육목적으로 제시하였다.
1798년 12월, 스위스 정부는 프랑스 군대가 스위스를 침략함에 따라 발생한 고아들을 위해 슈찬츠(Stanz)에 빈민 아동들과 전쟁고아를 위한 고아원을 설립하고, 페스탈로치에게 고아들을 돌보아 줄 것을 요청했다. 페스탈로치는 사회에 기여하였다는 생각으로 신문사 편집국장을 떨쳐 버리고 슈탄츠로 가서 고아원의 책임자가 되어 평등한 인간관계에 입각하여 고아들을 성심으로 돌보았다. 이로 인해 도덕성이 전혀 없다고 여겨지던 가난하고 버림받은 고아들도 교육적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하면 도덕적으로 선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고아원이 야전병원으로 징발되면서 6개월 만인 1799년에 문을 닫았다.
1800년부터 4년 동안 페스탈로치는 부르크도르프에 있는 서민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하였다. 이곳에서 페스탈로치가 실시한 교육방법은 종래의 다른 사람들과 달랐고 그 성과는 아주 좋았지만 오히려 교장은 페스탈로치가 학부모를 선동한다고 생각하여 내쫓았다. 이후 중상층 자제가 다니는 시민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였는데 이곳에서의 교육방법도 찬사를 받았다. 장남 야곱이 위독하여 노이호프로 잠깐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교사로 열심히 일하다가 정부의 정신적·물질적 호의와 원조 아래 1800년 10월 부르크도르프의 고성(告成)을 대여받아 학교를 열었다. 이곳에서의 교육도 유럽에 명성을 떨치며 4년간 일하다가 정치 동요로 인해 성을 반납하고 이페르텐(iferten) 성으로 옮겨 갔다.
1804년 이페르텐(Iferten)으로 옮긴 페스탈로치는 이후 21년간을 계속해서 교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페르텐으로 옮긴 후 첫 5년 동안 페스탈로치는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여 적용하였고 그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유럽의 많은 군주들이 자녀를 보냈고 지식인들도 참관하러 왔다가 페스탈로치의 교육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빈민 자녀를 대상으로 하고자 했던 그의 생각과 달리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몰려와 학교를 운영하기에 벅차게 되었다. 또한 자연적·통일적 방법과 기계적·인위적 방법이라는 두 가지 다른 점을 조화시키지 못해 고민하기도 했고 제자들의 공명심으로 인해 알력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즈음 부인인 안나가 1815년에 세상을 떠나자 페스탈로치는 의욕을 잃었고 이로 인해 이페르텐의 학원도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1818년 자신의 순수한 이념에 맞는 빈민학교를 다시 세운 페스탈로치는 다시 이전과 같은 명성을 얻었으나 이전의 이페르텐 학원처럼 변질되어 결국 이페르텐을 떠나 손자가 사는 노이호프로 돌아가 살다가, 1827년 2월 17일,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저서로 《은자의 황혼》,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인간 발달에서의 자연과정에 대한 나의 탐구》, 《게르트루트는 어떻게 그의 자녀들을 가르치는가》 등이 있다.
2. 교육이념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내면의 힘에 의해 지배를 받는 존재로, 교육은 이러한 존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인간성의 계발이며 인간의 내적 상태를 끌어내어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페스탈로치의 교육이념은 루소의 자연주의와 직관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기관, 전통, 관습 등이 인간을 타락시키므로 자연에 근거한 교육이 인간을 교육시키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즉, 자연이 유아의 발달에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여 자연에 근거한 교육을 주장하였다.
■ 페스탈로치의 인간관과 자연관
1) 인간관
인간 탐구는 페스탈로치의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문제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우선적으로 탐구하여 올바른 인간관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의 내면에는 동물적·도덕적·사회적인 세 개의 층이 있다고 보았다. 동물적 상태는 자연 상태로 인간의 충동과 이기적인 본능을 나타내며 동물과 다르지 않은 상태이다. 이 상태의 인간은 거칠고 야수적이며 충동적이고 선악이 미분화된 자연 상태 그 자체이다. 사회적 상태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야기되는 탐욕, 권력, 억압의 상태를 조직이나 법률, 관습 등으로 통제하는 상태이다. 사회적 상태는 모든 악덕과 침해가 합법화되고 지지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도덕적 상태는 개인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욕구에 의해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도덕적 상태는 새로운 탄생이며 독립된 자아의 행위에 속한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은 동물적 욕구의 충족, 사회적 관계의 충족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순화(醇化)를 갈구하는 하나의 힘, 즉 도덕적 진리를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진리의 감각으로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며, 교육이란 이런 도덕적 인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교육은 동물적·사회적 단계를 거쳐 인간의 선천적·내재적 소질의 조화로운 발달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순화하는 것이다.
2) 자연관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은 자연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페스탈로치에게 자연은 인간 고유의 본성이다. 또한 자연은 인간의 기본 욕구 또는 경향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자기를 도야한다. 인간이 자연의 순서를 너무 서둘러 지나가면 자기 안에 깃든 힘을 스스로 파괴하게 되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성의 평안함과 조화를 잃게 된다. 자연은 너그럽게 기다리고 서두르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억지로 밀어 넣는 인위적인 교육은 유아를 겉으로만 반짝이게 할 뿐이다. 이것은 유아 속에 깃들어야 할 자연의 ㅎ여성을 방해하며 자연의 결핍을 안 보이게 덮어 버린다. 자연의 법칙에 의한 인간의 도야는 인간이 가진 힘의 자기발견이므로 외부에서 일정한 형식을 강요하기보다 자기 스스로의 성장을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야 한다.
페스탈로치는 자연은 진리이고 또한 신이라고 하였다. 신은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고 인간의 본질을 형성하므로 신에 대한 신앙(信仰)은 모든 지혜와 성스러운 복의 근원이다. 선악을 구분하는 감각,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의분심(義憤心), 이것이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깃들어 있다. 따라서 교육은 자연을 가꾸어 줌으로써 타고난 선한 자연의 힘을 발전시키고 인성을 완성한다. 그리고 교육의 이념이란 인류의 소질과 힘을 자연스럽게 발전, 도야시켜 개인적으로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인간을 육성하는 데 있다.
< 유아교육철학 및 교육사, 김희태·정석환,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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