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현대의 유아교육 - 성숙이론

인간의 발달은 유전적·환경적 측면의 영향을 받는다. 이 가운데 유전적 측면에 의한 발달을 강조하는 입장이 성숙주의 혹은 성숙이론이다. 성숙이론(成熟理論)은 인간의 발달에 대한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인정하고 유기체가 지닌 내부의 발달기재에 의해 발달이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성숙이론에서 성숙(成熟)이란 인간의 내부에 들어 있는 어떤 형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발육된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이미 성장하고 발달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나타난다. 이러한 성장은 정해진 발달 순서와 발달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숙이론은 게젤과 그의 동료들이 예일 클리닉(Yale Clinic)에서 아동의 운동신경발달에 관한 연구를 통해 발전시킨 것으로 특히 이들이 만든 표준행동목록(behavior norms)은 오늘날 소아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발달의 기본 정보로 사용하고 있다.

 

1. 게젤의 생애

아널드 게젤(Arnold Gesell, 1890~1961)은 예일 대학의 아동발달 클리닉에서 아동의 신체 및 운동발달, 지능발달, 언어발달, 사회성 발달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다. 게젤은 유아들을 임상 관찰하여 성장과 발달에 관한 ‘표준행동목록(behavior norms)’을 만들었다. 표준행동목록은 유아들의 성장과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각 연령에서 나타나는 발달 특성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아의 각 연령에 따른 보편적이고 표준적인 발달의 특징을 체계화한 것이다.

 

게젤과 그의 동료들은 성숙의 특징을 운동특성(몸통 활동, 눈과 손), 섭생, 정서 표현, 꿈과 공포, 자아와 성, 상호 개인적인 관계, 놀이와 오락, 학교생활, 도덕의식의 영역과 시간, 공간, 언어, 사고, 죽음, 신 등으로 정리하면서 사람의 인성이나 발달속도, 능력 등은 개별적이고 독특하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태어날 때 타고나는 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발달은 유기체가 가지고 태어나는 내부의 발달인자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환경도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즉, 환경은 인간이 지닌 내부의 발달 특징에 적합하고 조화로워야 하며 환경이 내부의 발달과 조화롭지 못하다면 발달은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발달의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교육은 유아가 개별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발달기제나 발달 패턴에 따르는 것이 좋다. 학교와 집에서는 유아의 속도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서 유아의 발달을 도와야 하는데, 유아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적극성도 감소시킨다(Thomas, 1992). 그러므로 발달은 유기체가 내부에 지닌 발달의 특성에 의하지만 외부 환경의 영향도 고려되어야 함을 게젤은 주장한다.

 

2. 성숙이론

성숙이론은 1940년 초반에 구체화된 이론으로 루소의 성선설과 자연적 발달단계에 근거한다. 성숙이론은 미릴 정해져 있는 발달 내부 기제의 단계적인 성숙을 강조한다. 루소에 의하면 인간은 옮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발달은 순차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내적 계획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루소는 유아에게 자연적인 방법으로 성장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유아는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이 유아를 가르치는 것은 유아의 자연적인 성장을 이끌지 못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루소는 유아의 발달에 성인이 개입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하였다.

 

루소의 주장은 홀(Hall)의 아동연구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홀(Hall)은 아동의 성장 및 발달을 직접 관찰하여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달은 예정된 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하였다. 게젤은 이러한 홀의 주장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 패턴은 태어나면서 이미 결정된 유전적 요인이며 이러한 요인에 따라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발달에 정론적 관점을 제시하였다(이영석, 1993).

 

발달예정론적 관점에 근거하면 발달은 이미 선천적으로 내재된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리고 발달은 순서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며 사회문화에 관계없이 보편타당한 모습을 보이고 이는 각 연령에 따른 발달의 ‘표준행동목록’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성숙은 발달을 이끄는 힘이며 인간의 발달은 내재적·유전적인 성숙을 바탕으로 실현된다.

 

1) 성숙의 개념

게젤은 유전자가 발달 과정을 방향 짓는 기제에 대한 명칭을 ‘성숙(maturation)’이라고 하였다. 발달에서의 성숙은 환경의 역할과는 구별된다. 환경적 요인은 성숙을 유지시키지만 성숙을 이끌고 행동 유형을 순서에 따라 전개하는 것에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성숙기제(maturational mechanism)이다. 성숙기제는발달이 특수한 방향으로 진행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출생 전의 태아는 머리부터 먼저 발다랗고 출생 후에도 머리가 먼저 발달하며 이후 목이나 어깨, 팔, 손, 손가락 등의 순서로 통제된다. 머리에서 발쪽으로 발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발달은 일정한 순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이 성숙기제이다.

 

성숙되었다는 것은 유기체가 지닌 내부의 성숙기제가 제대로 발휘되고 통제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내적 기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존재하며, 성장함에 따라 특정한 순서로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서기 전에 앉고, 걷기 전에 선다. 즉, 걷기 이전에 앉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붙잡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앉기나 붙잡고 일어서기 등의 기능들이 충분히 발육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걷기 위해서 앉거나 붙잡고 일어서는 능력은 신경계의 성장과 함께 발달하며 신경계의 성장은 유전자에 의해 중재된다. 이처럼 성숙은 내부의 성숙기제가 온전히 발휘되고 통제될 수 있는 상태로 유전에 의해 영향을 받고 온전하고 다른 발달기능과 조화를 이루어 나타난다.

 

유기체의 내적 성숙기제가 특정한 순서로 지속적으로 발달한다고 해서 모든 유아에게서 같은 속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즉, 모두 같은 연령에 서고, 같은 연령에 걷는 것은 아니다. 성숙이론에서의 발달은 모두 같은 순서로 이루어지지만 발달하는 속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게젤에 의하면 이러한 개인차도 주로 내적 유전기제에 의해 통제된다.

 

성숙 과정에서 유기체의 발달은 내적 성숙기제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발달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순서적이며 단계가 있고 개인에 따라 다른 속도로 나아가며 보편적이다. 성숙이론에서 의미하는 성숙의 개념을 발달과 관련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발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계적이고 누적적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모두 같은 순서를 거쳐 이루어진다.

셋째, 발달의 예정된 시간표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즉, 발달 속도는 개인차가 있다.

넷째, 연령에 따라 어떤 보편적인 특징을 보인다.

 

2) 성숙이론의 기본 개념

성숙이론에서는 성장과 발달을 결정 짓는 성숙기제(maturational mechanism)가 발달에 주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성숙이론에 의하면 유기체는 내적 발달기제의 성숙으로 발달되므로 유기체가 지닌 내부의 발달기제가 중요하다. 유기체의 내부 발달기제는 이미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화되어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그램화된 발달기제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발달이다.

 

성숙이론에서는 성숙과 발달을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는데, 유기체가 지닌 내부의 발달기제가 언제 성숙되는가에 따라 개인의 발달은 다르게 나타난다. 즉, 발달은 발달기제가 펼쳐지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인간의 발달을 관찰해 보면 대체로 어느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발달기제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는 연령에 따라 보편적인 현상을 보인다. 이에 게젤과 동료들은 발달의 이러한 현상을 발달의 ‘표준행동목록’이라고 규정하였고, 이는 준비도, 결정적 시기 등의 개념과 연결된다(김희태·정석환, 2012).

 

단, 성숙이론은 발달이 전적으로 발달의 내적 기제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숙이론은 발달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외부 자극이나 사물, 사건 등이 인간의 발달에 영향을 미쳐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성숙이론은 외부 환경을 제공하여 교육이나 연습을 하거나 혹은 반복을 통하여 발달을 이끄는 것과는 다르며, 내재된 발달의 기재가 환경과의 조화로운 상태에서 더 잘 발달하므로 발달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최소한만 인정한다. 성숙이론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표준행동목록은 인간의 어떤 발달이 어느 시기에 나타난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사춘기처럼 개인에 따라 그것이 펼쳐지는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표준행동목록에 의한 발달은 연령에 따라 보편적인 모습을 보인다.

 

둘째, 준비도이다. 인간 내부에 있는 예정된 시간표에 따라 발달이 이루어지며 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발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발달이 나타나려면 내적 발달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준비도의 개념에 근거하면 발달의 예정된 시간보다 앞서 발달을 조장하거나 가르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외부의 자극이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결정적 시기이다. 결정적 시기는 어느 특정한 발달이 특별히 일정한 시기에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최적의 상태에서 최상의 발달로 이끌 수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최적의 상태란 준비된 상태를 의미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최상의 발달이다. 그러므로 결정적 시기는 내적으로 충분히 외부의 자극에 반응할 준비가 된 상태이며, 이러한 상태가 바로 적기(適期)이고 내적 기제의 준비도와 연결되어 있는 개념이다.

 

넷째, 적절한 환경의 준비와 제공이다. 내적 시간표에 따라 최상의 발달이 이루어지려면 이에 적합한 환경이 필요하다. 현재의 발달 상태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면 훨씬 좋은 발달의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내적 발달의 상태를 알고 이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성숙이론에서는 환경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인정하는데, 이것은 내적 발달기제가 펼쳐질 상태라고 하더라도 환경이나 상황이 발달을 지원하지 않으면 최상의 발달을 이끌 수 없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내적 발달 상태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최상의 발달 상태로 이끄는 데 필요하다.

 

< 유아교육철학 및 교육사, 김희태·정석환, KNOU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