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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철학

코메니우스의 유아교육

by ⍣Humpback whale⍣ 2023.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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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요한 코메니우스(Johann Amos Comenius, 1592~1670)sms 1592sus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 주 니브니츠(Nivnitz)에서 태어났다. 코메니우스의 아버지 마르틴(Martin)과 어머니 안나(Anna)는 보헤미아(Bohemia)의 종교개혁 신교교단인 모라비아(Moravia) 형제교단에 속한 독실한 신자였다. 아버지 마르틴은 코메니우스가 10세 때 사망하였고 어머니도 곧 사망하여 숙모에 의해 목수의 제자로 양육되었다. 1608년인 16세 때 코메니우스는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하였다. 이때 그는 자기의 공부가 늦었음을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1611년인 19세에 코메니우스는 헤르보른(Hervorn)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과 철학을 연구하다가 당시의 유명한 자연철학자인 톰마소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 1568~1639)의 저작에 감명받고, 이후 암스테르담·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신학, 라틴어, 그리스어, 철학 등을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1614년인 22세에 모라비아의 학교에서 교사와 교회 지도사로 활동하다가 24세에 모라비아 형제단의 성직자가 되어 풀네크에서 목회를 하였다.

 

1618년에 교단본부가 있는 풀네크(Fulneck)로 옮겨 목사로 일하다가 당시 국왕에 반대하며 신교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보헤미아인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신교와 구교간의 30년전쟁(1618~1648)으로 인해 보헤미아를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 하자 다른 성직자들과 북부 보헤미아로 피신하여 생활하였다. 오랜 피신생활 후 1628년에 동포 교단 사람들과 폴란드 리사(Lissa)에 정착하여 함께 설립한 김나지움에서 교장과 목사로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코메니우스는 교육을 통한 사회개혁을 열망하였다. 그는 교육실천가와 교육사상가로서 역할을 하면서 1631년에 그리스어 교과서인 《어학입문(語學入門)》을 1632년에는 《대교수학(大敎授學, Didactica Magna)》을 저술했다. 또한 그는 30년전쟁 초기에 현실 부정 사상으로, 정치, 학문, 종교를 부정하였으나, 인간과 사회 원리를 새롭게 포착하고 청소년교육과 민중계몽의 방법을 ‘범지학’으로 체계화하였다. 1642년 스웨덴 정부의 초청으로 교육개혁 운동에 참여한 후 1648년 폴란드로 돌아가 모라비아 교단의 주교가 되어 저술 및 교회 활동에 전념하다가 1670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1632년의 《대교수학》과 1658년 유아의 감각발달과 라틴어 교육을 목적으로 한 《세계도회(世界圖獪, Orbis Sensualinm Pictus)》가 있다.

 

2. 교육관

코메니우스의 교육관은 범지학(凡知學, pansophia)에 기초한다. 범지학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모든 방법으로’라는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실재를 파악하고자 한다(이숙종, 1996). 그에 따르면 사물에는 물리적 세계 및 형이상학, 자연학, 초자연학(hyperphysica) 등이 있다. 형이상학은 사물의 지적 측면, 자연학은 사물의 감각적 측면, 초자연학은 사물의 영적 측면이며 이를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는 것이 범지학이다(Comenius, 1659; 김은권·이경영 편역, 1998).

 

코메니우스의 범지학은 신학적 입장에서 출발한다.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기초된 세계는 서로 관계를 가진다. 자연과 정신은 하느님이 직접 만들었으며 하느님의 세계인 성경 세계와 일치하는 통일성을 보이는 조화롭고 질서 있는 세계이다.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감각·이성·신앙의 눈이며, 이 눈은 하느님이 인간에 심어 둔 지식, 도덕성, 신앙의 씨를 발아시킨다. 이것을 발아시키는 것이 코메니우스가 생각하는 교육이다(정일웅, 2003). 코메니우스는 하느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문제라고 보았으며, 하느님이 만든 세계의 창조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질서에 적합한 전체에 대해 교육받아야 한다. 이것이 코메니우스가 생각하는 범교육(凡敎育)이다. 그러므로 코메니우스의 범지학은 범교육을 내포한다.

 

코메니우스의 범교육은 세 가지를 지향한다(정일웅 역, 1996). 첫째, 모든 사람이 교육받아야 한다. 이때 모든 사람이란 연령, 신분, 지위, 족속, 민족, 성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말한다. 둘째, 모든 것을 교육받아야 한다. 인간이 온전하고 완전한 본성을 가지려면 모든 것을 교육받아야 한다. 셋째,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모든 방법은 하느님의 질서가 드러난 자연의 질서대로 철저히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코메니우스의 범교육은 ‘모든 사람에게(Omnes)’, ‘모든 것을(Omnia)’, ‘모든 방법으로(Omnino)’ 주어지는 교육이다.

 

인종, 성별, 사회계층, 국적, 신체적 장애 등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다. 그리고 교육은 지혜에 도달하는 수단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므로 인간이 배우는 것은 인간의 세계인 정신의 책, 사물의 세계인 자연의 책, 성격에서 나온다. 즉, 모든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교육적인 내용과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3. 유아교육관

코메니우스의 유아교육관은 기독교에 근거한다. 특히 《대교수학》에서는 유아들에게 신앙을 심어 주는 교수법을 언급한다. 기독교에 근거한 코메니우스의 교육관은 그의 아동관에 잘 드러나 있으며, 지적·도덕성·신앙교육으로 정리되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 아동관

코메니우스는 유아는 합리성을 가진 순결한 피조물, 가소성을 지닌 존재라고 바라보았다. 첫째, 유아가 합리성을 가진 순결한 피조물이란 성경에 근거한다(조래영, 2002).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는 구절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창조된 것에 가장 높고 절대적이며 탁월한 존재이다. 이는 곧 인간이 하느님의 성품이나 속성을 지닌 완전함을 대표하는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합리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도 듣고, 보고, 냄새를 맡으며 맛을 볼 수 있지만 사물의 어떤 형상을 파지하는 것은 인간처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이 지은 존재 가운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자 그 생각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곧 인간은 합리성을 가진 피조물이다. 따라서 유아는 합리성을 가진 피조물이다. 그러나 유아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실제적인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계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날 뿐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외부의 도움에 의해 펼쳐지므로 유아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유아가 지닌 합리성을 펼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창세기 3장에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소개되는데, 이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원죄를 지닌 타락된 존재이므로 죄에 있어서는 온전한 존재가 아니라고 코메니우스는 주장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부리고, 불공적하고 시기하며, 교묘하게 남을 속이고 뻔뻔하며, 강탈하고, 원수를 만들고, 편을 만들어 남을 괴롭히는 일 등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단순함 대신에 거짓말과 사기, 무례한 행위, 겸손 대신에 교만과 불손을 나타내며, 교만이나 불손, 무례등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아는 원죄를 물려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순결한 존재이다. 코메니우스는 인간의 현재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삶을 위한 준비 단계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나라에 적합한 자가 되어야 하고, 그런 인간의 모범은 성인이 아니라 곧 유아라고 보았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의하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를 인용하면서 어린아이들이야말로 어른에 비해 죄의 유혹에 더러워지지 않았고 세상의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아직 받지 않아 어른에 비해 순결하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아는 본질적으로 원죄가 있어 내면의 죄 성향을 다스리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가소성을 지닌 존재(장화선, 1993)란 유아를 자연의 식물에 비유하는 개념이다.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유아는 묘목 혹은 하늘나라의 어린나무로 비유된다. 나무는 어린 초목일 때에는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지만 큰 나무가 되면 변화가 불가능하다. 이렇듯 인간도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유아기는 인성이 형성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며, 유아는 온전한 인격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지적 존재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유아의 정신은 자기 모습을 아직 그려 넣지 않은 백지와 같지만 이것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방법들, 즉 행동하고 말하며 이해하는 방법들이 아직 없는 상태이다. 이로 인해 유아는 교육받아야 하며 교육을 통해 이러한 방법을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정리하면 유아는 잠재적으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며 외부의 영향에 의해 그 가능성의 변화를 나타낼 수 있는 존재이다. 즉, 가소성을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유아에게 지혜의 소산을 제공해야 하며, 부모나 교사는 유아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지혜와 도덕 및 신앙을 가르쳐 유아가 합리적이며 지혜롭고 덕이 있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 유아교육철학 및 교육사, 김희태·정석환, KNOU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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